ㅇ 본문 : 막 11:1-10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7절)
1. 고대 왕들은 즉위식을 할 때 노새를 탔다. 그들이 노새를 타고 왕궁에 입성한 것은 '겸손하고 인자한 왕인 것 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노새는 말과 나귀를 이종교배한 잡종이다. 나귀를 말처럼 보이기 위함이다.
2.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해 보이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겸손하셨기 때문에 노새도 아닌 나귀 새끼를 타셨다.
3. 예수님이 전파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다. '힘'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라 '겸손과 섬김'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다.
4. '겸손해 보이려는 것'과 '겸손한 것'은 비슷해보이나 열매가 다르다. '겸손해 보이려는 것'의 열매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되고 '겸손한 것'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
5.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신다고 하셨다. 좋은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열매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6. 겸손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낮아지는 사람만이 '생명과 영광의 면류관'을 삶의 최종적인 열매로 맺게 될 것이다.
7. 나귀 새끼가 예수님을 등에 모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했기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환영과 칭송을 보낼 때 그 환영과 칭송을 함께 받은 것이다.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다면 그저 묶여있는 볼품없는 나귀일 뿐이다. 낯선 사람이 와서 주가 쓰실 것이니 달라고 할 때 그냥 줘도 괜찮을 만큼 그리 값어치가 없던 볼품없는 나귀일 뿐이다.
8. 볼품없고 값어치 없는 나귀라도 겸손하신 예수님을 모시는 순간 나귀는 귀한 존재가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9. 만약 나귀가 사람들의 환영과 칭송이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인줄 알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뽐냈다면? 예수님이 떨어지셨을 것이다.
10. 그 순간 나귀는 도살장 행이다. 다른 나귀로 교체될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꺽으신다고 하셨다.
11. 교만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고 나를 죽이든지 남을 죽이든지 누군가를 죽인다. 교만은 결국 영혼을 병들어 죽게 한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교만한 자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지옥의 문을 여는 것 뿐이다.
12. 세상은 교만한 자가 세력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겸손한 자가 세력을 얻는다.
13. 하나님의 나라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가정, 교회, 만남을 보면 그 안에 반드시 겸손이 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통해 일하시고 겸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14. 겸손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겸손이 없는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없다. 겸손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수 없다.